[故 지덕칠 중사]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지덕칠 중사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63년 해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1966년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위생하사관으로 월남을 향해 떠난다
[대민지원 사업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이발하고 있는 한국군]
그는 수많은 작전과 전투 속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전우들을 구출하여 치료했으며
근무 시간 이후에는 베트남 주민들을 정성껏 치료해 인망이 높았다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아이들을 안은채 다급히 달리는 한국군]
1967년 2월 1일. 지남칠은 월남 추라이 지구에서 수로측량 작업을 하던
미 수중파괴대(UDT) 요원을 엄호하는 경계 작전에 참가한다
그러나 적의 매복에 걸려 부대는 착륙하자마자 베트콩의 맹렬한 공격에 맞딱드린다
3소대 첨병부대 소속 지덕칠 중사는(당시 계급은 하사) 총탄을 무릅쓰고 달려가 부상병들을 응급 처치한다
순간 수류탄이 날아들었고 하반신에 파편을 맞은 그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뒤 김수돌 일병의 부축을 받아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끌고 소대 본부로 퇴각한다
소대장에게 보고를 한 그는 부상병들을 위한 모르핀을 마구 챙겼다. 그의 부상을 본 소대장이 만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적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다
위험을 느낀 그는 '다들 피하라'고 소리치며 미군 통신병의 M4 소총 총탄을 베트콩들에게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10여명의 베트콩을 사살했으나 적의 총탄 또한 그의 가슴을 꿰뚫은 후였다
헬기들이 연이어 후속 병력을 싣고 나타났으나 적의 맹공으로 부상병을 후송할 수 없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직전의 아들을 울먹이며 쳐다보는 어머니]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지덕칠 중사는 베트콩 20여명을 사살하고 수많은 아군을 치료해 살렸다
자정 무렵 마지막 후송 헬기가 도착해 지덕칠 중사를 탑승시킨다
그러나 심한 출혈을 이기지 못하고 헬기 안에서 그는 숨을 거둔다. 28세 젊은 군인의 죽음이었다
지 중사의 영웅담은 동아일보 특파원이던 박동환 기자에 의해 본국에 대서특필 되었으며
이를 읽은 박정희는 매우 감격하고 또 슬퍼했다고 한다. 지덕칠 중사는 사후 일계급 특진과 함께
군 최고의 명예인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지덕칠 동상. 해군사령부]
이후 해군 진해사령부에 지덕칠 중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매년 추모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http://www.ilbe.com/205239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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