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 명절 추석, 잘 보내고 있어?
추석을 가족들이랑 잘 보내길 바라고 나는 오늘도 너희들을 위한 정보글을 가지고 왔어 ㅇㅇ
"세상을 바꾼 심리학자들"이 끝나고 연재하게 될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역시 너희들이 알짜배기 상식과 지식을 얻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노력했으니까 재밌게 읽어주길 바래.
※주의 : 이번글은 좀 스압임.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함. 바쁜 사람은 끝의 세줄 요약만 읽길.
요새 가장 이슈가 되는 일이 뭔지 알아?
우리나라는 정치 문제로 시끄럽지만 유럽 및 전세계 자동차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사진 출처 : 모터리언)
바로 2013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야.
매년 열리는 이 모터쇼는 전 세계 최대규모라 할정도로 많은 업체들이 참가하고 전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의 관심도 쏠려.
특히 독일에서 열리는 모터쇼인 만큼 독일 기업들의 강세가 두드러지기도 해.
오늘 우리가 알아볼 사람이 이 회사와 관련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꺼낸건데,
그 회사가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야. (다임러 벤츠 라고도 하지.)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 슈트르가르트에 본사가 위치한 세계최고의 자동차 제조 기업이지.
국내에서도, BMW와 쌍벽을 이루며 수입차 판매 1,2위를 다투고 있어.
고급 차 브랜드로 이미지가 굳혀져서,
모두들 벤츠하면 믿을만하다고 할 정도로 신뢰와 역사가 두터운 기업이야.
오죽하면 수입차 오너들 사이에선 삼각별 하나만 보고 산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아무튼 오늘 알아볼 인물은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 (Karl Friedrhch Benz)
바로 이사람이야.
이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냥 벤츠의 창업자라고 말할 수 있어.
이 글에서는 칼 벤츠라고 할게.
칼 벤츠에 대해 쓰려면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자동차의 역사야.
왜냐하면 칼 벤츠는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거든.
카를 벤츠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동차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할 테니 혼동하지 말고 읽어주길 바래.
1844년 11월 26일.
독일의 외딴 시골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나.
그의 이름은 Karl Friedrhch Michael Wailend (카를 프리드리히 미하엘 바일런트).
어머니 요셉 바일런트와 당시 기관차 운전사였던 아버지 요한 조지 벤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어.
이 아이가 2살이 되던 해,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열차 사고로 죽게 되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이는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로 개명하게 되.
그래. 이 아이가 훗날 이 세상 역사를 바꾸게 되는 카를 벤츠야.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후에, 벤츠의 집안은 굉장히 가난해졌어.
어머니 혼자 생계를 모두 감당해야 했지.
그래서 벤츠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고 해.
하지만 어머니 요셉 바일런트는 그런 아들을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다름 없게 키웠고, 훌륭한 교육도 받게 해주었어.
훌륭한 어머니였지. 없는 살림에 모든 정규교육을 마치게 해주었으니까.
그런 어머니의 노력에 부흥했는지,
벤츠는 어릴 때부터 학업 성적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해.
9살에 지역 초등학교를 성적으로 평정한 벤츠는,
과학에 흥미가 생겼는지 과학을 전문으로 가르쳐주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
처음엔 자물쇠와 관련된 제철을 공부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따라 기관차와 같은 공학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어.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벤츠는
1860년에 불과 15살이라는 나이에 공학 전문 교육 대학인 카를스루에 대학에 시험을 통과하며 입학하게 됐어.
벤츠의 천재성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지.
카를스루에 대학에 입학한 벤츠는 기계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어.
카를스루에 대학은 현재에도 독일에서 높은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이야.
그리고 19살에 대학을 졸업하는데,
대학 졸업반이던 1864년.
당시 대학에 등교할 때 자주 애용하던 자전거를 보면서
자동차의 컨셉을 고안하게 돼.
벤츠가 살던 1800년대 후반은 대부분의 운송수단이 마차인 시절이었어.
마차는 상당히 원시적인 운송수단이었고, 벤츠는 기관차와 자전거를 번갈아 보면서
"말없는 마차"를 처음으로 고안하게 됐어.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벤츠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라도 하듯,
당시 독일의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여러 회사들을 떠돌아 다녔지.
벤츠가 약 6개의 회사를 7년동안 떠돌아다녔는데,
그 시간을 헛으로 쓴 것 만은 아냐.
벤츠가 기계 제조 회사, 계량기 제조 회사, 제철회사등
여러 공학관련 회사에 근무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들은 훗날 그의 업적에 보탬이 되니까.
그리고 자신이 고안했던 말없는 마차를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로 벤츠는
1871년에 다니던 회사를 모두 그만두고 만하임에 공장을 차렸어.
벤츠는 기계기술자인 오거스트 리터와 동업을 했어.
자본도 부족했고 자신의 기술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오거스트 리터는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어.
리터가 저지른 실수로 공장 자재가 압수되는 일도 일어나고,
그의 오만함으로 벤츠가 욕을 먹는 일도 생기지.
벤츠는 리터와 더이상 동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업인이었고 대부분의 자본을 지원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계속해야 했지.
(23살의 베르타 링거. ㅆㅅㅌㅊ?)
그러다가 이듬해인 1872년,
벤츠는 베르타 링거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둘은 단번에 결혼해버려.
베르타는 평범한 여성이었는데, 훗날 벤츠 못지않은 업적을 세우게 돼.
암튼 베르타는 벤츠의 상황을 보고, 자신이 가져온 결혼 지참금을 자본금으로 쓰라고 했지.
벤츠는 그 돈으로 리터를 해고하고 자신만의 공장을 만든거야.
자신만의 회사를 가지게 된 벤츠는 또 다시 고민에 빠져.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한 공장이자 회사였지만,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한 길은 멀고 험했어.
시간도 오래 걸렸고, 돈도 많이 필요했지.
그렇기에 수익을 낼 수익모델이 없었던 거야.
자동차가 나오려면 한참은 더 걸릴텐데 당장 재료를 살 돈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벤츠는 자신이 만들려던 자동차를 잠시 접고,
엔진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어.
벤츠는 자신이 마땅히 만들 수 있고, 돈을 벌만한게 엔진 밖에 없다는걸 깨닫고,
가솔린 기반의 2행정기관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헀어.
(2행정기관 엔진은 4행정기관 보다 훨씬 효율적인 동력 기관.)
벤츠가 이 2행정기관 엔진을 고안하게 된 계기도 재밌는데,
처음에는 4행정기관 엔진을 만드려고 했지만, 1877년에 다른회사에서 특허를 내버리는 바람에,
특허로는 돈을 못 벌것을 알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된거지.
벤츠는 1879년 첫 엔진을 생산하고,
엔진을 만들자 마자 특허에 등록했어.
그리고 표쥰 규격을 만들기 위해,
부품으로 사용되는 라디에이터, 클러치, 변속기, 시동을 걸때 필요한 배터리 점화 방식등을
모두 특허로 냈고.
이는 벤츠에게 떼 돈을 벌게 해주지.
벤츠는 재정이 안정되고, 엔진으로 돈벌이가 쏠쏠하자.
회사를 확장시키기 위해 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꿨어.
이름도 새로 지었고.
하지만 주주들은 벤츠의 사업과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천재성도 못 알아봤지.
결국 1883년에 벤츠는 5%의 낮은 지분을 문제 삼으며 이 회사를 나왔어.
그리고 같은해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몇몇 자본가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Benz & Cie. (벤츠&시에)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의 시작이야.
재정지원을 자본가들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벤츠는 일을 순조롭게 진행시켰어.
회사 직원도 25명으로 적당했고, 정부로부터 엔진 제조 승인도 받았지.
4행정 기관의 고성능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자신이 15살 때부터 꿈꿔왔던 자동차를 드디어 만들기 시작했어.
그렇게 3년이란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최대로 발휘한 벤츠는.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현재 독일 박물관에 소장중.)
1886년, 드디어 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이자,
전 세계 최초의 자동차.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Benz Patent Motorwagen)를 완성했어.
엄연히 말하면 이 차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아니야.
자동차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차라고 생각한다면,
세계 최초의 자동차는 1769년 프랑스의 군사 기술자 니콜라스가 만든 시속 5km 짜리 자동차가 최초야.
하지만 이는 증기기관을 이용해 달리는 증기자동차. 증기 기관의 단점이 여실히 반영되었기에,
현대적 자동차와는 거리가 멀어.
하지만 벤츠의 자동차는 달랐지.
954cc의 배기량. 100kg의 엔진 무게. 하지만 차체 중량은 250kg 밖에 안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술력이었고,
0.85마력과 1기통 4엔진으로써 최고속도 시속 16km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발명품.
게다가 당시로선 가솔린 엔진을 처음으로 사용한 자동차였고.
벤츠가 직접 발명했던 건전지를 이용한 높은 전압으로 시동을 키는 방법으로,
당시 자동차의 고질적 문제였던 쉽게 엔진이 꺼지는 문제를 보완했고.
변속기를 장착했으며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의 양도 조절할 수 있었지.
이는 현대 자동차의 시작이야.
그렇기에 벤츠를 자동차의 아버지이자 자동차의 발명가라고 부르는 거지.
그렇게 대중앞에 나오고 바로 특허를 받은 페이턴트 모터바겐.
1886년부터 1887년 까지 총 세대를 생산했는데,
1번 모델은 독일 박물관에 기증했고. 2번 모델은 보완을 위해 개발용으로 사용했으며.
실제로 운전에 사용 된 것은 3번이야.
여기서 3번 자동차가 또 중요해.
벤츠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발명했지만,
아직까지 문제는 있었어.
특허도 성공했고, 대중들의 반응도 엄청났어.
게다가 독일 뿐만 아니라 프랑스 특허도 받아냈었고 프랑스의 반응도 좋았지.
잘하면 해외수출까지 가능한 상황.
(칼 벤츠. 사진 출처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하지만 완벽주의자였던 벤츠는 아직 시판은 무리라고 생각했어.
물론 처음의 자동차가 뛰어난 반응을 얻긴 했지만 자신이 보기엔 부족한 점이 끝도 없이 보였던 거지.
어떻게 보면 실천력 없던 벤츠는 그렇게 자신의 최고의 발명품을 썩히고만 있었어.
(베르타 벤츠. 벤츠와 결혼하고 벤츠로 개명. 출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이때 다시 벤츠의 아내 베르타가 나오게 되는데.
베르타는 벤츠를 결혼한 이후 부터 계속 지켜봐오면서 뒤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왔어.
결혼 지참금으로 공장을 살때도 그랬고, 남편을 위해 늘 불평없이 헌신했지.
보통 위대한 사람들은 이렇게 아내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많지?
벤츠도 이 부류에 속해.
베르타가 우물쭈물하며 멍청하게 자신의 발명품을 썩히고 있는 것을 본 베르타는.
1888년 8월 5일 새벽 5시 30분.
남편 벤츠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쪽지를 하나 남겼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요."
그리고 베르타와 두 아들을 데리고 창고로 향했어.
창고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벤츠가 발명했던 페이턴트 모터바겐.
짧은 시험운행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운행된적 없었던 이 차에 탄 베르타와 아이들.
베르타는 이 차를 타고 친정에 가기로 결심한거야.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한참을 끌고 가다가
집이 보이지 않을 때쯤 엔진을 켰고,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운행이 시작 돼.
베르타는 간단한 자동차 운전법만을 익힌 채
자동차를 타고 자신의 친정인 포츠하임으로 향했어.
포츠하임 까지는 약 106km.
지금에도 만만치 않은 이거리를 베르타는 세계최초의 자동차로 가려했던 거야.
베르타는 우물쭈물하며 시판을 고민하던 벤츠를 보고
그가 만든 자동차의 우수성을 직접 보여주려고 이런 일을 꾸민거야.
참 멋진 여자지.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았어.
핸들도 요즘과 같지 않은 레버식이었고.
의자도 딱딱하고 타이어도 제대로 맞지 않았지.
출발한지 한시간 쯤 지났는데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어.
운전을 멈추고 확인해 보니 엔진을 식혀주는 냉각수가 모두 증발해 버린거야.
응급 처치로 아들에게 냇가에서 물을 퍼오라고 해 그 물로 엔진을 식힐 수 있었어.
날이 밝아왔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처다보며 주행을 시작한지 2시간 쯤.
이번엔 차가 아예 멈춰버렸어.
베르타가 확인해 봤지만 엔진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지.
원인은 바로 연료가 바닥난 상태.
베르타는 근처 약국에서 솔벤트를 구해 연료 대용으로 사용했어.
베르타는 중간 즈음에,
남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어.
"당신 몰래 자동차를 가지고 나와 미안해요.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우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편지와는 달리 베르타의 남은 여정도 험난하기만 했어.
또 다시 차가 멈췄는데, 이번엔 연료도, 엔진도 문제가 없었어.
고민하던 베르타는 연료 파이프에 낀 이물질이 문제라는 걸 발견하지.
(역시 천재의 아내답노... ㅎㄷㄷ;)
베르타가 자신이 꼽고있던 머리핀으로 이물질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출발했어.
가다가 세번째로 차가 멈췄을 때는 상황은 더욱 심각했지.
벨트가 닳아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거야.
할 수 없이 베르타는 가터벨트의 탄력밴드를 이용해서 고장을 해결했는데,
거의 도착했을 때는 이제 브레이크도 기능을 잃었어.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너무 많이 사용해 브레이크가 닳아버린 거야.
고민하던 베르타는 근처 구둣가게에서 새 구두를 사서 닳은 브레이크에 장착했어.
진짜 임기응변 능력 하나만큼은 쩌는 것 같아..
이렇게 긴 여정 끝에 106km를 모두 달려와 친정에 도착한 베르타는 정말 기뻤지.
사람들은 "이걸 타고 이렇게 먼거리를 왔단 말이야?" 라며 놀라워했어.
그리고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어.
"도착했습니다."
베르타의 자동차 운행은 자동차 역사에서 길이 남을 정도로 대단한 운행이야.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장거리 자동차 운전을. 그것도 여성이 혼자서 해냈으니까.
베르타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운전한 여성과 세계 최초로 장거리 운행을 한 자동차 운전자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벤츠는 잠에서 깨자마자 편지를 보고 깜짝 놀라 마차를 타고 친정으로 달려왔어.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베르타가 운행을 완료한 상태였지.
그리고 베르타가 운전한 차를 봤을 땐 정말 놀라워 했어.
그의 생각으로는 차가 여기저기 부서졌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차는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고, 106km를 실제로 달려온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기 때문이야.
벤츠는 베르타를 보며 감격의 포옹을 했다고 해.
그리고 한가지 깨달음을 얻지.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깨달음을.
"연약한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장거리 운행이 가능했다면, 내 차는 충분히 안전하고, 뛰어나다. "
이렇게 벤츠는 시판을 결심하게 돼.
또 베르타는 운행을 완료하고 벤츠에게 세가지 요구조건을 말했는데
아래와 같아.
1. 브레이크의 가죽을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 것.
2. 핸들을 다른 방식으로 고칠 것.
3. 마력이 약해 오르막길을 제대로 오를 수가 없음. 마력을 높일 것.
베르타는 자신이 겪은 문제들을 종합해 벤츠의 자동차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여자야.
(베르타의 세계최초 장거리 운행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베르타와 두 아들을 기념하기 위한 독일의 동상.)
이와 같은 베르타의 업적 덕분에 베르타는 벤츠 못지 않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어.
독일에서는 이런 베르타와 아이들을 기르기 위한 행사도 열리고. 동상도 있음.
벤츠는 실제로 죽기 직전 회고록에서 " 내 성공은 모두 아내 덕분이다. " 라고 말했다고 해.
그만큼 베르타가 벤츠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지.
베르타는 벤츠가 자동차의 아버지라 불리는 만큼 자동차의 어머니라고 불리우고 있지.
아무튼 이런 일화로 시판을 결심한 벤츠의 그 이후는 승승장구였어.
벤츠&시에는 대규모 공정 시설로 발전했고,
저가 소형 자동차인 벨로를 출시하여 1200개의 모델을 판매했는데,
세계 최초의 양산 모델이라고 불리지.
19세기 말. 혁신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발전한 벤츠&시에는
이제 더이상 작은 공장이 아니라 세계 자동차 사업을 선도하는 기업이 됬고.
벤츠 역시 가난한 발명가가 아니라 벤츠&시에를 경영하는 최고 경영자가 됐어.
1890년에 50명이던 직원은
1899년에 450명으로 늘어나기도 했고.
연간 생산량이 600대가 되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으로 자리잡지.
회사가 나날이 발전함에도
벤츠는 자신의 자동차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엔진을 계속 개발했어.
모두 획기적이었고 좋은 평을 받았지.
(고트리프 다임러)
하지만 1903년. 새해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벤츠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와.
벤츠와 비슷한 시기에 가솔린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벤츠의 숙명의 라이벌인 고트리프 다임러야.
다임러 역시 같은 독일인이고, 공학기술자 출신이었으며,
비슷한 나이에다가 비슷한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시기에 자동차를 개발했었지.
다임러가 설립한 회사인 다임러 모터스의 주력 모델 메르세데스(Mercedes)가
1903년 당시에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어.
벤츠&시에의 경영진들은 이 메르세데스의 독주에 대항할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경영진들은 그에 대항할 모델을 프랑스의 고급 엔지니어인 르노 형제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어.
하지만 벤츠의 생각은 전혀 달랐지.
벤츠는 독일에도 충분히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많은데 굳이 프랑스의 엔지니어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벤츠는 경영진의 결정에 강력히 반대했지.
" 도저히 없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독일의 뛰어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을 버리고 프랑스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할 순 없습니다.
충분히 우리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 결정을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하지만 경영진은 완고했어.
메르세데스를 이기지 않고서는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거야.
벤츠는 프랑스 엔지니어들을 고용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이 메르세데스를 보완하는 모델을 만드는게 훨씬 낫다고 말했어.
이 메르세데스를 설계한 사람이 마이바흐(Maybach)인데, 이사람은 독일에서 자동차 설계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자세한 건 검색을 통해 알아보길.)
벤츠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 내세우다가 경영진이 그를 무시하고 설계를 진행하자,
그는 자신이 이제 퇴물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고.
벤츠&시에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어.
벤츠가 물러나자 벤츠&시에는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
하지만 경영진의 완고한 입장으로 자동차 설계는 계속 진행됬어.
벤츠가 자신의 남은 여생을 보내는 동안
벤츠&시에에서 프랑스 엔지니어들을 고용해 만든 자동차는 결국 메르세데스를 이기지 못했어.
그리고 벤츠는 1929년 4월 4일. 자신의 마지막을 맞게 돼.
그가 여생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했던 라덴부르크의 생가는 현재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어.
자동차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서지.
(20세기 처음 사용된 BENZ 로고. 현재와는 많이 다른 모습)
이렇게 벤츠는 죽게 되지만, 벤츠가 설립했던 벤츠&시에는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지.
그후의 벤츠&시에의 역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벤츠가 은퇴하고 난 뒤에, 메르세데스를 이기지 못하고 다임러모터스에게 계속 고전했고,
1926년에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경제난을 겪자 다임러모터스와 합병해서,
다임러벤츠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고,
1998년 미국 자동차 기업인 크라이슬러와 합병하지만 2007년 다시 매각했어.
그리고 다임러AG로 새로 출범했고.
그의 자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가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벤츠야.
벤츠는 그 명성 답게 역사가 굉장히 오래됬지?
이 역사가 기본이 되기 때문에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게 아닌가 싶어.
정말 장인정신과 역사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으로 말이지.
그리고 깨알지식으로, 메르세데스가 뭔지 궁금했지?
사실 메르세데스는 다임러나 벤츠와 마찬가지로 사람이름이야.
다임러가 살아있을 시절, 아직 다임러모터스와 벤츠가 합병하기 이전에 이야기야.
고트리프 다임러가 자동차를 생산을 막 시작했을 즈음,
옐리네크라는 사람이 와서 자동차를 여러대 주문제작하는데,
그때 걸었던 조건이 자동차에 이름에 자신의 딸인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넣으라는 거였어.
그게 이어져와서 다임러모터스의 주력 모델의 이름이 메르세데스가 된거고.
다임러와 합병한 벤츠도 이를 이어간거고, 역사에 맞춰 현재까지 남아있는거지.
또 앞서 메르세데스를 개발했다는 마이바흐도 다임러와 같이 일하던 엔지니어였는데,
현재 다임러AG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계열사인 마이바흐를 만들어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어.
후... 이번 글 굉장히 길었지?
내가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좀 길게썼네.
벤츠는 그 존재만으로도 자동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고...
[참고자료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공 역사 탭]
[ 세줄 요약 ]
1. 존나 천재적이서 말없는 마차를 만들기 시작한 칼 벤츠.
2. 만들었지만 멍청해서 시판안함. 부인의 도움으로 시판.
3. 대박쳐서 자동차의 아버지가 됐음.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출처: 일베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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